이십대 때는 언제나 세상에 화가 나 있었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좀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부모님은 작아 보였고, 내가 구해줘야 할 슬픈 물고기들 같았다.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했고, 살아보려고 버둥거렸다. 그러다 밤이 되면
혼자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엎드려 시를 썼다.
이유없이 위축됐고 늘 시간에 쫓겼다.
너그러움과 미소를 잃었고, 오랫동안 피로했다.
친구를 만나면 입버릇처럼 한 달만 푹 쉬었으면, 아니 단 일주일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그렇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빈둥거리며 쉴 거라고,
심심하다는 얘기를 하루에 열두 번쯤하며, 공들여 쉴 거라고 말이다.
- 어떤 날 3 / 박연준
바캉스(vacance)의 어원은 비어 있다 는 뜻의 라틴어 바쿠우스(vacuus)라고 한다.
이번 여름 휴가.
나도 필히 공들여, 쉬어야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책 읽다가 졸리면 자고
실실 동네 산책하다 배고파지면 허름한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
마음먹은 일을 모두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실천할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마음먹었는지를 새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필리핀의 어떤 섬으로 휴가를 떠났을 때의 일이다.
필리핀의 전통 수상가옥으로 한 채 한 채가 지어진, 아주 아담한 그 숙소에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깨끗한 바다와 간단한 스노쿨링으로도 만날 수 있는 알록달록한 열대어들, 매일매일 산해진미가 차려지는 레스토랑,
매일 저녁 식사와 함께 펼쳐진 재미있고 어설픈 민속공연, 파도소리가 귓전으로 들리는 방,
방에서 내다보는 아무도 없는 바다, 열대우림의 산책로, 조용함, 그리고 나른함.
그리고 평화로움. 낙원이었다.
- 어떤 날 3 / 김소연
휴가. 듣는 이의 마음을 참 설레게 하는 단어다. 사람들은 더 잘 쉬기 위해 저마다의 휴가를 상상하고 계획한다. 그러나 쉰다는 것은 무엇인가? 치열했던 일상의 정지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상 더 깊숙한 곳의 발견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북노마드 여행무크지 어떤 날 3호는 휴가라는 주제를 던졌다.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라는 가장 휴가다운 고민에서부터, 이탈리아 사람들의 근심 없는 프레고, 프레고까지의 휴가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는 휴가가 일상에서 벌어진 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삶에서 비어 있던 사이, 진공 상태, 틈새 같은 것. 삶에서 멈추어 떨어져 나온 것도 아니고 깊숙한 이면을 파헤치는 것도 아닌 사이의 발견, 비어 있음의 발견. 그 비어 있음의 발견은 채우려는 인간이 아니라 계속 비워져 있는 인간으로 완성된다. 가득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비워져 있기 위하여 우리는 모르는 거리를 헤매고,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방콕을 즐기고, 연인과 품을 나누고 다시 밥을 먹는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틈새를 위하여! 한없이 비워져 있는 바캉스적 인간이 되기 위하여! 그러니 오늘 우리는 쉬자. 한없이 비워진 채로, 진공 상태로, 사이를 발견한 채로 더 많은 것을 놓자. 비워져 있는 당신의 오늘, 휴가를 위하여.
저자소개
박세연_ 에든버러 칼리지 오브 아트(Edinburgh College of Art, ECA)에서 석사학위(일러스트레이션 전공)를 받았다. 학교에서 개최한 에서 대상을 받았다. 2003년 런던 아티스트 북페어, (상상마당, 2010)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지은 책으로 잔 이 있다. 강윤정_ 늘 텍스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문학동네에서 시와 소설, 평론을 다듬어 책으로 꿰고 있다. 김민채_ 한양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을 이루는 각각의 동네마다 숨어 있는 이야기를 찾아 더 서울 이라는 책을 썼다. 북노마드 편집자로 아주 예쁜 시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책을 만들고 있다. 김소연_ 1967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시집 극에 달하다 와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 산문집 마음사전 과 시옷의 세계 등이 있다. 제10회 노작문학상과 제57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다람(daram)_ 199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다. 등의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www.facebook.com/Darammusic 박연준_ 시인.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같은 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가 있다. 요조_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등의 앨범이 있다. 5년 만에 정규 2집 로 돌아왔다. www.yozoh.com 위서현_ KBS 아나운서. 1979년에 태어났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심리상담학을 공부했다. KBS NEWS 7, 2TV 뉴스타임 앵커, 1TV , KBS 클래식 FM 등을 진행했다. 이우성_ 시인, 아레나(ARENA) 기자,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무럭무럭 구덩이」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GQ DAZED AND CONFUSED 를 거쳐 현재 아레나 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를 냈다. 장연정_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현재 작사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득 짐 꾸리기와 사진 찍기, 여행 정보 검색하기, 햇볕에 책 말리기를 좋아한다. 여행산문집 소울 트립 슬로 트립 눈물 대신, 여행 이 있다. 최상희_ 소설가, 여행작가. 소설 그냥, 컬링 으로 비룡소 블루픽션 상을 탔다. 명탐정의 아들 옥탑방 슈퍼스타 등의 소설과 여행서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 강원도 비밀코스 여행 사계절, 전라도 를 썼다.
prologue 4 박세연_ 휴가 8 강윤정_ Nice, Pieces 12 김민채_ 동경東京 30 김소연_ 바캉스적 인간 62 다람_ 가까이, 더 가까이 90 박연준_ 보이지 않는 도둑이 훔쳐간 것들 108 북노마드 편집부_ 암스테르담에 갔다, We are on vacation 124 요조_ 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 146 위서현_ 푸른 곳에 마음 풀다 172 이우성_ 더 자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일어났다. 그녀가 말했기 때문이다. 더 자.190 장연정_ 휴가에 관한 몇 개의 말풍선들 208 최상희_ 프레고, 프레고 232 epilogue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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